책의 306페이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1. 책의 첫인상
사실 책을 고를 때 본 양귀자 작가님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저는 책구매의 선택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제 흐릿한 기억을 대충 더듬어 봐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작가님이라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님의 소설을 단 하나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게 구매욕을 불러일으켰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이 책을 구매한 지 일 년이 넘었고, 두 번을 정말 글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심취해서 읽었답니다. 매력적인 책이었어요. 놀랍게도 매번 읽을 때마다 인물의 구성과 매력, 그리고 저의 인물 이해도가 바뀌어서 너무 재밌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땐 적당히 어려웠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 보니까 엄청 어려운 책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이곳저곳 자리를 바꿔가면서 구경해 보니 더더욱 재밌었습니다. 더불어 작가님의 문체가 너무 깔끔해서 책 읽기도 매우 편안했습니다. 책은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25살 여자 '안진진'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 여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책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고, 중요한 내용도 나올 수 있습니다. 혹시 읽기 전에 보신다면 이 점 유의해주세요.
- 저자
- 양귀자
- 출판
- 쓰다
- 출판일
- 2013.04.01
17p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던 나는 무엇인가. 스물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나,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나, 궁핍한 생활의 아주 작은 개선만을 위해 거리에서 분주히 푼돈을 버는 것으로 빛나는 젊음을 다 보내고 있는 나.
아주 예전에 20대는 왜 불안할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20대는 가진 게 없으니까. 자꾸 인정받아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생기죠. 20대에 뭔가 엄청난 '어떠한 걸' 해내야 한다는 그런 이상한 조급함 말이죠." 이 말을 들으니까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20대 안의 젊음에 '내 인생의 중심점이 되는 명확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정말 와닿게 표현했더라고요. 미성년자 때 생각하던 성인에 대한 이미지와 20대가 되어 느끼는 현실이 겹쳐지면서 오는 괴리감이랄까요? 내가 생각했던 20대는 어른인데, 미성년자와 확실하게 다른 어떠한 걸 책임지고, 결정하고, 잘 알고 있는 어른인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그 확실한 무언가를 찾았거나 해내고 있는 사람, 뭐 크게 말하면 인생의 소명일 수도 있고, 직업이나, 성과가 될 수도 있죠. 책을 처음 읽을 땐 몰랐는데, 두 번째에 읽을 때 보니까 저런 것들을 20대에 완벽하게 찾아 버리면 남은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우리의 인생은 장기 레이스라는 걸 왜 자꾸 까먹는 걸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조급하게 갉아먹을까요? 읽으면서 많은 생각과 의문이 스쳐 지나가던 부분이었습니다. 삶은 어쩌면 거대하고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217p
나라고 해서 그 모든 길들에 대해 충분히 사색하지 않았겠는가. 이미 섭렵은 끝났다. 사색이 깊은 나머지 인생 자체가 졸렬해지고 말았다면, 이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늘 나 자신을 원망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사실 제가 그런 사람인지 어릴 땐 잘 몰랐어요. 제가 늘 저를 자학하고 있다는 걸 말이죠. 저는 모든 일의 성패 원인 90% 정도를 저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은 '나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만 한다'가 당연히 기본 선택지인 줄로만 알고 살았어요. 남들을 미워할 이유는 없지만, 남들과의 경쟁에서 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니까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제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때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이렇게까지 삶을 갈아넣으면서 네가 보고 싶은 내 삶의 종말은 뭔데?"였어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차분히 글로 쓰다 보니까 제가 원하는 삶은 이때까지 해온 것들과 연관을 짓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로웠어요. 내 욕구도 아닌 것들에 끌려다니느라 제 삶을 죽여가고 있던 걸 깨달았죠.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제 욕구와 남의 욕구를 냉정하게 구분할 수 있더라고요. 어쩌면 우리는 똑같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원치 않는 욕구를 쫓아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고 나만의 고유함이 없어지지는 않는데 말이죠.
303p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는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는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나 이해가 중요해진 오늘 날, 뇌과학과 심리학을 열심히 들여다봐도 여전히 저에 대한 이해는 어렵더라고요. 여러 책을 전전하면서 저는 스스로의 감정이나 욕구도 완벽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인 걸 깨닫게 되었죠. 그런 제가 가끔 저도 모르게 남을 평가하고 남을 마음속으로 재단하기도 했다는 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사람은 입체적이고 삶은 모순적이며, 그 사람과 같은 맥락에 서있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할 텐데 말이죠.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직 해석하지 못한 것이지 판단할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3. 책에 관한 총평과 선물로 주고 싶은 사람
저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즐겁고 오랫동안 음미하면서 봤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저는 겨우 두 번 읽었지만, 그 두 번이 느낌이 너무 달라서 정말 재밌었습니다. 여전히 진진이의 아버님을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했고, 주리와 진모 그리고 장우가 보여준 삶을 완벽하게 와닿도록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삶과 사랑에 대해, 가족과 연인을 통해 보여주는 시선들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생각할 것도 질문할 것도 정말 많았던 책이었습니다. 문학을 통해 내 삶의 범위를 늘려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생각이 오갔던 책이었습니다.
『 모순 』은 20대 ~30대 초반까지 선물로 주기에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어요. 물론 책 묵직하게 즐기시는 분들이 선호할 책이긴 합니다. 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갑자기 주기엔 조금 무거운 감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그리고 이유 모를 공허함과 삶에 관한 고민의 답변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켄 리우『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SF 문학 소설 리뷰 (0) | 2023.08.19 |
---|---|
최소 비용으로 내 아이디어를 테스트 하는 법을 알려주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리뷰 (0) | 2023.08.04 |
[달러구트 꿈 백화점]책 리뷰/추운 겨울에 선물하기 좋은 따뜻한 책 (0) | 2023.01.05 |
[모순]책 리뷰/ 방황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0) | 2022.12.31 |
[나를 사랑하는 연습] 책 리뷰/ 꽃이랑 같이 주기 좋은 책 (0)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