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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켄 리우『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SF 문학 소설 리뷰

by 박애주의자12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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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 켄 리우의 두 번째 단편 선집『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권위의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만에 첫 동시 수상한 대표작 「종이 동물원」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켄 리우의 미출간 단편 중 엄선하여 엮은 한국판 단편집이다.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 번역상을 수상한 장성주 씨가 엮고, 저자 켄 리우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머리말을 따로 수록하였다. 켄 리우의 데뷔작인 「카르타고의 장미」를 필두로, 스페인 권위의 상 이그노투스 상 수상작 「사랑의 알고리즘」, 한글에서 영감을 얻은 「매듭 묶기」,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시리즈인 '싱귤래리티 3부작' 등 총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작품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 차원을 초월한 형태의 다양한 가족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각기 죽음과 영생, 인종과 문화의 충돌 등 동시대 현대인들이 가진 여러 관심사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본격적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고민을 담고 있다. 열여섯 살에 자신의 자유를 위해 자식을 버린 부모가, 젊음을 유지한 채로 늙어버린 자식을 다시 만나는 「호」, 자신에게 남은 고작 2년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딸아이의 전 성장과정을 7년 주기로 지켜보는 「내 어머니의 기억」, 육체적 출산이 아닌 정신의 분배를 통해 아이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디지털 세계의 가족을 보여주는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간병인 대신 간병 로봇을 통해 화면으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임종을 지켜보는 「곁」, 자식의 성장과 독립, 그리고 남겨지게 된 부모의 모습이 인상적인 「뒤에 남은 사람들」 등 켄 리우가 펼쳐보이는 가족의 이야기는 시간과 차원을 초월하여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낸다. 특히 비슷한 문화권의 특성상 켄 리우의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 그 어느 SF 작가보다 정서적 공감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저자
켄 리우
출판
황금가지
출판일
2020.07.03

1. 켄 리우 작가만의 특별한 매력이 더욱 돋보였던 책 

원래 켄 리우 작가를 엄청 좋아합니다. 책 후기를 객관적으로 남기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켄 리우 작가만의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문체를 좋아합니다. 마치 따뜻한 색으로 그려낸 엄청 날카로운 그림 같달까요? 『종이 동물원』이란 작품으로 알게 되었는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을 읽어보는 걸 추천드려요. 저는 『종이 동물원』이 더 담백한하고 켄 리우만의 색깔을 더 쉽게 느낄 수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켄 리우 작가는 이 책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현재와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된 미래, 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가치 평가,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의미 등을 묻습니다. 켄 리우 작가는 본인이 의도적으로 "도래할 리 없는" 미래에 관한 것들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제는 고민해봐야 할 내용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이 동물원
SF에서부터 환상문학,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켄 리우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집 『종이 동물원』. 총 14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2017년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였다.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인 아버지가 결혼 정보 카탈로그를 보고 선택한 여성이었던 잭의 어머니. 영어를 할 줄 아는 홍콩 출신이라고 했지만, 사실 모두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었다. 종이를 접어 동물을 만들고, 숨을 불어넣으면 살아움직였다. 어린시절의 잭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종이 동물들, 특히 종이 호랑이를 무척 아꼈다. 성장하며 동양인의 눈을 가진 자신이 백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면서부터 어머니와 닮은 모든 것이 싫었던 잭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동물은 모두 상자에 넣어 치웠고, 영어로 말하지 않는 어머니에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성년이 될 때까지 어머니를 외면하며 자랐고, 그녀가 암으로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호랑이가 잭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접힌 종이 호랑이에 적혀 있는 어머니의 편지엔, 그녀가 들려주고 싶어하던 오랜 이야기가 또박또박 적혀 있는데……. 어린시절, 선물 포장지를 사용해 종이 동물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중국인 어머니와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짧지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하며 저자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표제작 《종이 동물원》, 일본군의 731부대의 잔학성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 등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느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을 SF 환상문학 장르에 녹여낸 작품들과,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춘 수작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켄 리우
출판
황금가지
출판일
2018.11.29

 


2. 날 고민하게 만들었던 내용들(역시 허상은 즐거워)  

8 page, 저자 머리말
지난날의 지혜가 설득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선 이들은 상상도 못 했던 갖가지 선택과 직면한 시대에 한 개인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 만물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변하지 말아야 할/ 변하지 않아도 되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

책을 다 읽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가면,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어요. 미래를 보는 예언자가 아닌 이상 제가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할 수는 없겠죠. 답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저 질문처럼 많은 문제와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겠죠. 어차피 완벽한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답을 고르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알고 있는 감각과 생각에 더 집중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삶이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살아있는 삶을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여러분들도 책을 읽게 되신다면 다 읽고 8 페이지를 다시 펼쳐 이 내용을 읽어보시면 저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합니다.

 

 

239 page, 곁
이제 밤마다 어머니한테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당신은 서랍장 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외면하고 만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떠올리려고 애쓰다가, 이럴 땐 픽션을 흉내 내려하는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건 아닌데, 그걸 또 그렇다고 난 나쁜 사람은 아니지 하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역겨울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만 괴로울 뿐인 생각이더라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럴 땐 정말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의 정답을 알려줬으면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정에 평균값이라는 게 어디 있겠어요. 내가 느끼는 게 감정이고, 그 자체를 느끼고 직면해야 하는데 말이죠. 늘 그게 어렵더라고요. 

 

 

 

 

289 page, 달을 향하여
“하지만 ‘인종과 종교, 국적,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이 사유인 건 아니지요.” 장원차오는 자기가 들었던 말을 인용하고 나서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았다. “저는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집이 한 채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답니다. 세상은 참혹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법은 그중 일부만 들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더군요.”

앞으로도 우리의 법과 제도는 현실을 따라올 수 없겠죠. 세상의 발전 속도는 너무 다양하게 융합하고 너무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니까요. 비록 법과 제도가 따라오지 못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사유하고 고민해 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끔 현실을 살면서 지치더라도, 책을 자주 집어 들어야만 할 이유를 오늘 또 배워갑니다. 문학은 늘 이런 재미와 생각을 안겨주어서 너무 좋습니다. 

 

 

 

 

 

393 page, 모든 맛을 한 그릇에 ―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
“바깥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는 나도 모른다. 인생은 모름지기 실험이니까. 하지만 눈을 감을 때가 되면 우리는 알 것이다. 우리 삶을 마음대로 휘두른 것은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었음을, 우리가 거둔 승리도 우리가 저지른 실수도 온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었음을.

이 글처럼 삶은 내가 주체일 때 정말 본질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그걸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갈망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걸 마치 죄악처럼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요? 비록 가끔은 나태할 수도, 가끔은 엉뚱해 보일 수도, 가끔은 멍청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도전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도 더더욱 이런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3. 삭막한 삶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몰래 선물하고 싶은 책 

실제로 문명의 발전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해졌죠. 켄 리우 작가는 어쩌면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 내면 자체에 관심을 돌려 본질로서 살아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바쁘게 흘러가는 삶과 화려한 일상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진짜 뭘 중요시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은은하게 초점을 맞춰주는 책이거든요.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는 내면을 살펴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전 몸에는 안 좋겠지만, 오늘은 마카롱이 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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